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못 떴습니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화면만 바라봤는데, 그 상태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변우석 배우가 연기한 풍운호가 남긴 "보고 싶어, 21세기의 네가"라는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혀서, 극장을 나오는 내내 멍했습니다. 1999년 세기말 감성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후유증이 남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삐삐와 비디오 가게가 만들어낸 세기말 감성
이 영화가 묘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건, 199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단순한 소품 이상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삐삐(무선호출기)는 당시 10대 사이의 핵심 소통 수단이었고, 비디오 가게는 동네 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보라가 백현진의 삐삐 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온갖 수를 쓰는 장면은 지금 보면 황당하면서도 웃기는데, 그게 또 그 시절의 진짜 풍경이라는 점에서 묘한 공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어릴 적 기억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그 장면들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미장센(mise-en-scène) 연출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 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특히 카메라의 시선 변화를 통해 보라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백현진을 향해 있던 카메라 앵글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은호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는데, 그 전환이 대사 없이도 보라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가, 두 번째 볼 때야 비로소 그 의도를 눈치챘을 정도로 섬세한 연출이었습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감정선에서는 소위 플롯 디바이스(plot device)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플롯 디바이스란 이야기의 흐름을 특정 방향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설치하는 장치를 가리킵니다. 보라가 연두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이미 보냈던 진심 메일을 삭제하는 선택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장면은 솔직히 너무 답답해서 혼자 소리를 낼 뻔했는데, 그 답답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답답하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됐다는 뜻이니까요.
이 영화가 소환하는 향수(nostalgia)의 감정은 단순한 복고 취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영화와 향수의 관계를 다룬 연구에 따르면,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사는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감정적 공명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 이 영화를 보면서 1999년을 살지 않았던 젊은 관객들도 "왠지 모르게 그리운"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세기말이라는 배경이 이 영화에서 특별히 중요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1세기가 오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인물들의 엇갈림이 단순한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의 엇갈림처럼 느껴집니다.
- 삐삐, 비디오 테이프, 공중전화 같은 소통 수단들이 오늘날의 관객에게는 낯설어서, 그 불편한 소통 방식이 오히려 인물들의 어긋남을 더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 밀레니엄(millennium), 즉 천 년의 전환점이라는 시간적 상징이 은호의 죽음이라는 결말과 맞물려 영화 전체에 운명론적인 색채를 입힙니다.
첫사랑의 미학과 신파적 비극의 경계
변우석 배우가 연기한 은호는, 제가 직접 보고 나서 "이 역할은 이 배우가 아니면 안 됐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련하고 조금 슬픈 눈빛,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보라를 위해 롤러코스터를 타려 하는 장면까지 전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캐릭터와 배우의 이미지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결말이 이렇게 갈 줄 몰랐습니다. 에버랜드에서 은호의 고백을 차갑게 밀어내고, 동생의 교통사고로 또다시 엇갈리다가, 결국 은호가 밀레니엄 이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비디오 가게 폐업 정리 중에 밝혀집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슬픔이기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웠습니다. 서사의 인과율(causality) 측면에서 허술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과율이란 원인과 결과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서사의 기본 원칙인데,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 연결고리가 다소 느슨하게 풀렸다고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비극적 결말이 나쁜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 비극이 충분히 준비되었는가입니다. 보라가 은호를 밀어내는 이유는 연두에 대한 죄책감이지만, 그 감정이 깊이 있게 쌓이기 전에 죽음이라는 결말이 들이닥친 느낌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나 오해가 풀리고 은호가 이미 세상에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구조는, 카타르시스(catharsis)보다는 허탈감에 가까운 여운을 남겼습니다. 카타르시스란 비극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말하는데, 저는 이 영화의 결말에서 그 정화보다는 미처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덩어리가 남았습니다.
영화 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이처럼 인물의 죽음을 감정적 클라이맥스로 활용하는 방식은 한국 멜로드라마에서 오랫동안 반복된 패턴입니다. 한국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 로맨스 영화는 신파적 결말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https://www.kofic.or.kr)). 이 영화도 그 계보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이별이었다면 개연성과 여운 모두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시 보고 싶다가도, 막판의 그 장면들은 차마 다시 못 보고 스킵하게 됩니다. 앞부분의 달달한 장면들은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는데, 뒷부분은 감정 소모가 너무 커서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아쉬움과 여운이 동시에 남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세기말 감성의 첫사랑 이야기에 끌리신다면 한 번쯤 보시길 권합니다. 단, 결말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미리 해두시는 게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