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가 지금도 재조명 요구가 나온다면, 그건 단순한 흥행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2010년 영화 《초능력자》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당시 극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봤는데, 좌석에서 몸을 앞으로 당기게 만드는 긴장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한국 SF 장르물의 불모지에서 탄생한 배경
2010년 당시 한국 상업영화의 SF 장르 점유율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영화 개봉편수 중 순수 SF 장르로 분류된 작품은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했으며,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런 환경에서 《초능력자》는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에 가까운 정신 조종 능력을 가진 악역을 전면에 배치하는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여기서 텔레키네시스란 정신력으로 타인이나 사물에 물리적 영향을 주는 초자연적 능력을 의미하며, 할리우드 SF에서는 이미 수십 년간 주류 소재로 활용된 개념입니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생경할 수밖에 없었던 이 설정이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의족(prosthetic leg) 설정까지 더해졌습니다. 의족이란 하지 절단 등으로 다리를 잃은 인물이 착용하는 보조 기구를 의미하는데, 당시 한국 영화에서 주인공의 신체 특성으로 의족을 내세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시나리오가 시대를 5년은 앞서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초능력자》가 시도한 장르적 실험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 영화 최초 수준의 '정신 조종' 초능력 빌런 설정
- 주인공의 신체적 한계(의족)와 초인적 회복력의 대비 구조
-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인물에게는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내러티브 장치
- 강동원이라는 미형 배우를 완전한 악역으로 기용한 캐스팅 역전
강동원·고수 캐스팅이 만들어낸 심리전의 밀도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사실 특수효과가 아니었습니다. 강동원이 악역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장르였습니다.
캐스팅 디렉션(casting direc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캐스팅 디렉션이란 단순히 배우의 연기력만이 아니라, 배우가 대중에게 가진 이미지를 작품의 의도에 역이용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초능력자》는 강동원이 쌓아온 선하고 순수한 청년 이미지를 정면으로 뒤집어, 눈빛 하나로 군중을 지배하는 냉혹한 초인으로 배치했습니다. 이 역전이 주는 불쾌감과 몰입감은 계산된 연출의 결과입니다. 제가 극장에서 실제로 느낀 감각도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저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습니다.
반대편에 선 고수의 규남은 카타르시스(catharsis) 구조를 담당합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란 관객이 주인공의 고난과 극복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심리적 정화 효과를 의미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서사학 개념입니다. 교통사고에도 불사신처럼 살아남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규남이라는 캐릭터는 이 카타르시스를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정은채 배우도 당시 인상이 깊었고, 에네스 카야 등 외국인 배우들의 감초 연기가 긴장감 속에 리듬을 끊어주는 역할을 해줬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외국인 조연의 활용이 이렇게 자연스러웠던 경우는 당시 기준으로도 드문 편이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장르영화에서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역전 활용하는 캐스팅 전략은 관객의 심리적 몰입을 평균 대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지하철 명장면이 말해주는 것
영화의 전반적 서사는 초인의 정신 조종 능력이 균남과 아기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 위에서 전개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닙니다. 순수성, 즉 이해타산 없이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라는 주제의식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크게 소름이 돋았던 순간은 단연 마지막 지하철 장면이었습니다. 초인과의 충돌로 하반신 마비(paraplegia) 상태가 된 균남이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리를 움직이는 장면입니다. 하반신 마비란 척수 손상 등으로 인해 하체의 운동 및 감각 기능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즉각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영화는 그것을 알면서도, 혹은 알기 때문에, 그 불가능을 뚫고 나오는 각성의 순간을 넣었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내러티브(narrative) 아크의 정점이기도 합니다. 내러티브 아크란 주인공이 초반의 상태에서 시련을 거쳐 변화하는 이야기의 곡선 구조를 의미합니다. 균남은 특별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내내 당하기만 하다가, 신체 한계조차 의지로 초월하는 순간에 비로소 진정한 초인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능력을 가진 쪽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편에서.
결국 《초능력자》는 지금도 유효한 영화입니다. 서사의 허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초능력 설정의 일부 규칙이 일관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르물이 넘쳐나는 지금 시점에서 다시 꺼내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선제적인 시도였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SF나 슈퍼히어로 장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스트리밍으로 한 번쯤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강동원과 고수의 비주얼만으로도 두 시간은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lUAwzXgus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