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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척의 일생 리뷰 (줄거리, 댄스 장면, 세계관)

by movienote 2026. 5. 29.

아무런 정보 없이 포스터만 보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꽤 오랫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척의 일생》이 그랬습니다. 스티븐 킹 원작, 톰 히들스턴 주연이라는 조합인데도 왜 이 영화가 조용히 묻혔는지 지금도 의아합니다. 삶을 역순으로 돌아보는 구조, 그리고 한 인간의 내면이 하나의 우주라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작품입니다.

 

척의 일생

 

 

3막에서 시작하는 영화, 왜 거꾸로 보여줄까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영화를 보다가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지?" 하는 혼란 속에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순간 말입니다. 《척의 일생》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는 비선형 내러티브(non-linear narrative)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비선형 내러티브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퍼즐 조각을 맞추듯 서사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3(세상 멸망 직전의 현재) → 2(척의 성인 시절) → 1(척의 유년 시절) 순서로 진행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인물의 현재를 먼저 보여주고, 그 뒤에야 "왜 이 사람이 이렇게 살게 됐는가"를 밝혀주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묵시록적(apocalyptic)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 마티가 전처 펠리샤를 찾아 떠나고, 거리 곳곳에 "39년 동안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광고 문구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묵시록적이란 세상의 종말을 다루는 장르적 특성을 뜻하며, 보통 재난이나 붕괴를 배경으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쓰입니다. 그런데 이 멸망하는 세계가 실은 39세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척의 기억 조각들로 구성된 '척의 우주'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날 때,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묘한 감각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이 반전이 공포보다는 슬픔에 가까웠습니다.

 

영화의 핵심 테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 인간의 내면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다

- 삶의 끝을 알면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결정적이었던 순간들

- 여러 사람의 빛나는 순간이 교차할 때 일어나는 기적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오큘러스》, 《닥터 슬립》으로 공포 장르에서 이름을 알린 감독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공포 대신 정서적 충격을 택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호러 감독이 이토록 따뜻한 인간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발견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내러티브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내러티브 정체성이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함으로써 자아를 형성한다는 이론으로,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척이라는 인물은 바로 이 이론을 온몸으로 살아낸 캐릭터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알면서도, 그 이야기를 아름답게 써 내려간 사람이었으니까요([출처: 미국심리학회(APA)](https://www.apa.org)).

 

댄스 장면이 왜 그토록 오래 기억에 남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버스킹 드러머의 연주 앞에서 회계사 척이 즉흥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고, 방금 남자에게 차인 여인과 함께 커플 댄스를 펼치는 장면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회계사라는 설정, 길거리라는 공간,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댄스라는 조합이 어색할 법도 한데,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단순히 잘 찍어서가 아닙니다. 척은 춤을 좋아했던 할머니와 계산에 능했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조부모에게 길러지면서, 그 두 가지 성향이 척의 정체성 안에 공존하게 됩니다. 회계사로 살던 그가 드럼 소리 하나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인 것은 할머니가 심어준 DNA가 살아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인물의 행동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의 전 생애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는 일종의 메타포(metaphor)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타포란 어떤 대상을 직접 서술하는 대신 유사한 속성을 가진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수사 기법입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영화가 이 장면을 척의 시선만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함께 춤을 춘 여인, 드럼을 연주한 버스커 각자의 내레이션도 함께 삽입됩니다. 그 순간이 척에게만이 아니라 세 사람 모두에게 각자 인생의 '우주적 순간'이었음을 영화는 조용히 증언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건 저 자신의 어떤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평범해 보여도, 훗날 되짚어보면 삶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장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영화 서사 연구에서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가 제안한 이 개념은, 인간이 완전한 몰입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으로 이후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합니다. 댄스 장면은 그 절정 경험의 시각적 구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출처: 매슬로 연구 아카이브 / 브랜다이스 대학교](https://www.brandeis.edu)).

 

톰 히들스턴을 비롯해 추이텔 에지오포, 카렌 길런 등 마블 시리즈에서 익숙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는 마블과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특히 척을 연기한 톰 히들스턴은 끝을 알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물의 초연함을 과잉 없이 표현해 냈습니다.제 경험상 배우가 감정을 절제할수록 관객이 더 많이 울게 되는데, 이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

 

《척의 일생》은 상영 시간 1시간 50분으로 길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한 인간의 전 생애를 압축하되, 억지로 전부를 담으려 하지 않습니다. 빛나는 순간들, 정체성을 형성한 결정적 장면들만 골라 보여줍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진짜 편집 철학입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당신의 인생에서 "그때 그 순간이 나를 만들었구나" 싶은 기억이 하나쯤 떠오르는 작품을 기다리고 계신다면, 지금 바로 쿠팡플레이에서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엔딩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긴 여운을 남기고,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척의 우주가 당신의 우주와 잠시 교차하는 경험, 한 번쯤 해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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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MFlXM3ZX8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