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AI로 만든 영화"라는 말이 그냥 마케팅 수식어인 줄 알았습니다. 기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겠거니 하고 큰 기대 없이 틀었는데, 화면이 바뀌는 순간마다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한국 최초로 생성형 AI를 상업 영화에 적용했다는 작품, 영화 중간계 이야기입니다.

AI영상 기술이 만들어 낸 몰입감의 균열
영화 초반 20분은 제가 직접 봤는데, 솔직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온라인 도박으로 돈을 챙긴 인물을 여러 세력이 추격하는 구도는 익숙한 한국 범죄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고, 인물 관계도 군더더기 없이 전개됐습니다. "어, 이거 볼 만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 초반부가 생성형 AI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실사 촬영 파트였다는 점입니다. 20분이 지나면서 영화는 갑자기 장르를 바꿉니다. 추격전 중 모든 인물이 사망하고 '중간계'라는 사후 세계로 넘어가는 설정인데, 이 순간부터 텍스트-투-비디오(Text-to-Video) 방식으로 생성된 장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텍스트-투-비디오란 텍스트 프롬프트, 즉 글로 입력한 묘사를 AI가 영상으로 자동 생성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AI 생성 영상이 퀄리티가 낮더라도 맥락이 맞으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보니 문제는 퀄리티 이전에 '일관성'이었습니다. 생성형 AI 비디오는 렌더링 결과물마다 스타일, 질감, 색감이 달라지는 퀄리티 컨트롤 이슈가 있고, 이 영화는 그 결과물을 유료 상업 콘텐츠에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화면의 밀도가 달라지는 느낌이었고, 저는 그 순간마다 영화 밖으로 튕겨 나오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중간계를 표현하는 방식도 의아했습니다. 한밤중 텅 빈 서울 도심 골목을 찍어 사후 세계로 묘사했는데, 세계관을 설명하는 어떤 내러티브도 없었습니다. 그 공간에서 작동하는 법칙도, 인물이 그 공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하늘에서12 지신 동물 형상의 저승사자들이 등장하는데, 이 CG 퀄리티는 게임 컸신(Cut즉 게임 내 플레이어 조작 없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영상 시퀀스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가 AI 기술을 활용한 영상 표현에서 실질적으로 드러낸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장면마다 스타일과 질감이 달라지는 비일관성
- 세계관 설명 없이 시각 자극만 나열하는 서사 구조
- 실사 파트와 AI 생성 파트 사이의 극단적인 퀄리티 낙차
- 설정의 맥락 없이 등장하는 CG 캐릭터들
콘텐츠완성도 없는 기술 과시의 한계
영화 중반 이후 저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해치 동상이 거인 몬스터로 변신해 저승사자와 싸우는 장면이었는데, 이 시퀀스가 KT 관련 PPL(Product Placement)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PPL이란 영화나 드라마 속에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간접광고 기법을 말합니다.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기업 협찬 콘텐츠와 AI 생성 영상이 혼재되는 구조는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흔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계사로 도망친 주인공들을 사천왕 동상들이 지키고, 염라대왕이 직접 조계사에 등장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염라대왕은 메리야스 차림의 할아버지로 등장해 황당한 개그를 구사합니다. 그 역을 맡은 것이 실제 '통아저씨'였는데, 저는 처음에 패러디 캐릭터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진지하게 구성한 장면이었고, 웃어야 할지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당황스러움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결국 영화는 'To be continued'로 마무리됩니다. 해치는 거인 몬스터로, 염라대왕은 외계 생명체로 변해 광화문을 파괴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끊기는 방식입니다. 속편을 전제로 한 오픈 엔딩이지만, 이 시점에 관객에게 전달된 서사적 맥락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AI를 활용한 창작 도구는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표현의 범위를 넓힌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전제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AI로 생성한 영상이 표현의 범위를 넓힌다 해도, 그 표현 안에 이야기가 없으면 관객은 그 영상을 볼 이유가 없습니다. 2023년 국내 영화 관람객 통계에 따르면 한국 관객의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는 코로나 이전 대비 아직 회복 중인 수준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https://www.kofic.or.kr)). 관객의 선택지가 좁아진 시장에서 콘텐츠 완성도는 더 직접적인 변수가 됩니다.
생성형 AI 활용 콘텐츠 시장의 성장세와 별개로, 콘텐츠 자체의 서사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AI 활용 콘텐츠 제작이 늘수록 창작자의 기획력과 편집 판단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https://www.kocca.kr)). 이 영화는 바로 그 부분에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기술이 구현할 수 있는 범위는 넓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판단이 따라가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중간계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소비자에게 판매할 준비가 된 작품이라기보다 기술 가능성을 시연하는 내부 시험작에 더 가까웠습니다. AI 영상이 과거 메타버스처럼 기술 과시 수단으로만 소비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이 기술이 실제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기여할 기회도 점점 좁아질 것입니다. 기술보다 먼저 "누가 보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솔직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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