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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 리뷰 (영화분석, 이용수할머니, 위안부증언)

by movienote 2026. 5. 26.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위안부 이야기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민원 왕 할머니가 구청 직원과 티격태격하다 영어를 배우는, 전형적인 코미디 감동 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후반부에 이르러 화면이 완전히 달라졌고, 저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 한 편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아이캔스피크

 

코미디로 포장된 역사적 맥락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2017년 개봉한 한국 영화로, 극 중 인물 옥분은 구청 직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민원의 달인으로 등장합니다. 9급 공무원 민재와의 충돌은 자연스러운 코미디 장치로 기능하지만, 이 관계가 나중에 영어 교습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에 사는 남동생 정남과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절반쯤 지났을 때, 진짜 이유가 드러납니다. 오랜 친구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 활동가인 정심이 건강 악화로 증언을 이어가기 어려워지자, 옥분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영어를 익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증언 활동가'란 전쟁 범죄 피해 사실을 직접 공개 발언으로 알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법정이나 의회, 국제 포럼 등 공식 석상에서 이루어지는 이 증언은, 단순한 개인 경험 고백을 넘어 역사적 기록이자 외교·법적 근거 자료로 기능합니다. 피해 당사자의 육성이 가지는 무게가 어떤 문서보다 크다는 점에서, 옥분이 영어를 배우겠다는 결심은 단순한 언어 학습이 아니라 역사를 향한 선언에 가깝습니다.

제가 이 구조를 되새길수록 감탄스러웠던 건, 영화가 초반 40분을 철저히 코미디로 소비하면서도 후반의 충격을 극대화하는 극적 전환, 즉 내러티브 반전(narrative reversal)을 아주 정밀하게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내러티브 반전이란 관객이 기대하는 이야기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뒤집어 감정의 진폭을 키우는 서사 기법으로, 이 영화에서는 코미디에서 역사 증언극으로의 전환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 설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반전이 와도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와 청문회 장면의 진짜 울림

 

영화의 실제 모델은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활동가인 이용수 할머니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 영상을 찾아봤는데,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그러나 누구보다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증언하셨습니다.

2007년 미국 하원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결의안, 이른바 '하원 결의안 121(H.Res.121)'를 채택했습니다. 여기서 하원 결의안이란 미국 의회 하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의회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외교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담습니다. 이 결의안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역사적 책임 인정을 촉구한 것으로, 이용수 할머니를 포함한 생존 피해자들의 증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영화 속 청문회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연출이 오히려 절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파적 배경음악이나 과장된 클로즈업 없이, 나문희 배우의 목소리와 표정만으로 그 공간 전체를 채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이 분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증언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청문회에서 나오는 "I'm sorry"라는 표현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에서 "I'm sorry"는 단순한 사과(apology)가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에 공감하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이 맥락에서 "I'm sorry"는 법적 책임 인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적 공감을 담고 있으며, 영화는 이 미묘한 언어적 차이를 감정의 장치로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위안부 문제가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감동보다 더 무거운 감정, 분노에 가까운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도의적 책임(moral responsibility)'을 언급하면서도, 법적 책임(legal liability)은 일관되게 부인해 왔습니다. 도의적 책임이란 법률적 의무와 관계없이 도덕적 차원에서 느끼는 책임감을 뜻하는데, 이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나 공식 사죄의 법적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측이 제공한 10억 엔 역시,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국가 간에 타결된 것이어서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전쟁 범죄에는 공소시효(statute of limitations)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소시효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법적 처벌을 청구할 수 없게 되는 제도인데, 반인도적 전쟁 범죄의 경우 국제법상 이 시효가 배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법적·인권적 과제입니다.

피해 할머니들의 현황을 보면 그 긴박함이 더욱 실감 납니다.

  •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총 239명이었습니다.
  • 2018년 기준 생존자는 그중명에 불과했습니다.
  •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공식 사죄를 끝내 받지 못하고 2019 9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습니다.
  • 이용수 할머니는 현재 생존 피해자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서는 피해자 증언 기록과 관련 자료를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영화를 보고 더 알고 싶어 졌다면 이곳부터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본 이용수 할머니의 청문회 영상은 영어 한마디 없이도 전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언어가 아니라 진실의 무게가 사람을 설득한다는 걸 그 영상이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제목 〈아이 캔 스피크〉는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킵니다.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마침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듣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것.

영화 한 편이 역사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는 충분합니다. 저처럼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다가 청문회 영상까지 찾아보게 된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이 더 줄어들기 전에, 진심 어린 사죄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참고: https://youtu.be/PlNTI908E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