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틀었다가 제목 하나에 멈췄습니다. 장항준 감독 신작이라는 말 하나만 믿고 아무 정보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실화라는 자막이 올라오는 순간, "이게 진짜라고?" 싶어서 바로 검색창을 열었습니다. 영화 리바운드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폐지 직전 팀, 그리고 공익 코치의 등장
처음엔 솔직히 설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전국 대회 MVP 출신인데 공익근무요원 신분으로 농구부 코치를 맡는다는 구조가, 말 그대로 드라마 같았거든요. 그런데 직접 보다 보니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이더군요. 현실이 픽션을 앞질렀다는 느낌.
강양현 코치가 부임한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폐지 직전의 팀이었습니다. 스쿼드(squad)란 팀을 구성하는 선수단 전체를 의미하는데, 이 팀은 그 스쿼드 자체를 처음부터 새로 꾸려야 했습니다. 코치가 직접 학교 복도를 누비고, 길거리 농구를 하는 아이까지 찾아다니며 한 명 한 명 설득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묘하게 뭉클했습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건, 스포츠 영화에서 팀 결성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센터(center)와 파워포워드(power forward)를 영입하고, 기범처럼 한때 에이스였지만 주춤해진 선수를 찾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센터란 페인트 구역(paint area) 안에서 득점과 리바운드를 책임지는 핵심 포지션이고, 파워포워드는 강한 피지컬로 리바운드와 내 외곽 플레이를 모두 소화하는 포지션입니다.
그러다 한준영이라는 에이스를 영입하면서 팀의 무게 중심이 쏠리기 시작합니다. 양현 코치가 한준영에게만 패스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팀 케미스트리(team chemistry)가 흔들리는 장면, 저는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팀 케미스트리란 선수들 사이의 신뢰와 호흡을 뜻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에이스 한 명을 데려와도 이게 무너지면 팀은 흔들린다는 걸 이 영화는 꽤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대회 당일 한준영이 이적하면서 팀은 비장의 무기를 잃어버립니다. 예상치 못한 이 전개가 오히려 남은 선수들의 결속을 끌어냈고, 저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습니다.
가비지 타임과 리바운드,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황에서도 코트를 떠나지 않는 선수들이었습니다. 교체 멤버가 부족해 로테이션(rotation)을 돌릴 수 없는 상황, 여기서 로테이션이란 경기 중 선수를 교체해 체력을 분산시키는 전술적 운용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의 부산 중앙고는 그 여유 자체가 없었습니다.
스포츠에서 가비지 타임(garbage time)이란 승패가 거의 결정된 상황에서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가비지 타임에서조차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 장면이 단순히 농구 이야기가 아니라 삶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스포츠를 빌려서 인생을 말하고 있구나'였고, 그게 후반부로 갈수록 더 짙어졌습니다.
재윤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장면, 규혁이 자신의 선수 생명을 걸고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 장면, 그리고 아무도 예상 못 했던 결승 진출. 이 흐름은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공식처럼 보이지만, 실화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선수들이 이 경기를 통해 얻고자 했던 건 우승컵이 아니었을 겁니다. 국내 스포츠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팀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유대감과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은 경기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크게 형성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스포츠심리학회](https://www.kssp.or.kr)). 이 영화가 정확히 그 부분을 건드렸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았던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실화를 기반으로 해서 극적 장치가 과장되지 않고 담백합니다.
- 아이들이랑 같이 봐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폭력성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 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경기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 청춘의 기억이 있는 어른이라면 묘한 향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산 중앙고라는 실제 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 말미에 나오는 실제 선수들의 사진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섭니다. 넷플릭스 국내 스포츠 영화 중 이만큼 조용히 울리는 작품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관객수가 많지 않았던 건 개인적으로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https://www.kofic.or.kr)).
삶에 지쳐 무언가에 치여 사는 분들, 혹은 지금 자신의 가비지 타임을 통과 중인 분들께 이 영화를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쏟은 치열한 시간은 단지 이기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걸, 언제고 다시 튀어 오르기 위한 밑거름이었다는 걸, 이 영화가 농구공 하나로 조용히 증명해 줍니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부담 없이 재생 버튼 한 번 눌러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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