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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영화 리뷰 (공간 공포, 리미널 스페이스, 케인 파슨스)

by movienote 2026. 6. 8.

텅 빈 대형 마트 복도를 혼자 걸어본 적 있으신가요. 사람이 가득해야 할 공간인데 아무도 없을 때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그 감각, 저도 꽤 자주 느끼는 편입니다. 영화 《백 룸》은 바로 그 감각을 두 시간 가까이 지속시키는 작품입니다. 16세 소년이 만든 9분짜리 유튜브 영상에서 출발한 이 도시 괴담이 어떻게 A24 장편 영화로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실제 극장에서 어떻게 느껴졌는지 정리해 봤습니다.

백룸

16세 감독과 포챈 도시 괴담의 만남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는 오랜 경력의 감독이 만들어야 완성도가 높다고들 알려져 있지만, 《백룸》의 케인 파슨스 감독은 그 통념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그는 16세였던 시절, 9분짜리 자체 제작 영상 하나로 7,88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튜브 판도를 바꿔놨습니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2019년 포챈(4 chan)에 올라온 사진 한 장입니다. 형광등이 켜진 누런 복도, 카펫 바닥, 아무도 없는 공간. 누군가 "현실을 잘못 통과하면 이곳으로 떨어진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백 룸'이라는 도시 괴담이 탄생했습니다. 파슨스는 이 개념에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의 미학을 결합했습니다. 리미널 스페이스란 공항 대기실, 학교 복도, 지하 주차장처럼 사람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전이 공간을 뜻하며, 그 공간이 텅 비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이용한 개념입니다.

 

파슨스는 당시 아마추어 백 룸 콘텐츠의 질에 불만을 느껴 직접 블렌더(Blender) 3D 모델링을 하고, VHS 화질을 흉내 낸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누군가가 실제로 촬영한 것처럼 위장한 영상 기법으로, 핸드헬드 카메라 흔들림이나 화질 열화를 의도적으로 삽입해 현실감을 극대화합니다. 이 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파슨스는 웹 시리즈를 거쳐 결국 A24의 장편 영화 최연소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2,740제곱미터 세트가 만들어낸 공간 공포의 문법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 초 산타클라라입니다. 가구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클라크는 심리 상담사 메리 클라임 박사에게 상담을 받으며 이혼 후 피해 의식과 건축가의 꿈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영화 시작 후 약 25~30분이 지나서야 클라크가 가구점 지하에서 백룸 통로를 발견하고 사라집니다. 메리도 그를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가 같은 공간에 갇히게 됩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클라크가 백 룸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황색 복도, 웅웅거리는 형광등 소음,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는 구조가 밀려오는데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이 압도감의 물리적 근거는 제작 규모에 있습니다. 제작진은 네 개의 사운드 스테이지를 합쳐 총 2,740제곱미터 규모의 실제 백 룸 세트를 지었습니다. 촬영 중 제작진 스스로 길을 잃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화 속 공간 묘사가 주는 압박감이 CG가 아니라 실제 물리적 구조물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큐브(1997), 비바리움(2019), 스키나마링크(2022) 같은 기존 공간 호러 영화들을 기술적으로 뛰어넘는 성취입니다.

 

촬영 기법 면에서도 눈에 띄는 선택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낮은 위치에 두고 광각 렌즈(Wide-angle Lens)를 사용한 샷이 반복됩니다. 광각 렌즈란 일반 렌즈보다 훨씬 넓은 화각을 포착하는 렌즈로, 공간을 실제보다 더 넓고 왜곡되어 보이게 만들어 피사체가 환경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강화합니다. 여기에 빈티지 신시사이저와 가상 악기를 샘플링한 사운드트랙, 형광등 특유의 저주파 노이즈가 겹쳐지면서 관객과 캐릭터의 불안이 공유됩니다.

 

이 영화가 공간 공포 측면에서 탁월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제 세트 구조물로 구현한 물리적 미로 효과

- 고저차와 좁은 통로를 활용한 인지 구조 교란

- 광각 렌즈와 낮은 앵글로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구도

- VHS 카메라의 화질 열화로 강화된 파운드 푸티지 질감

- 형광등 노이즈 기반의 사운드 디자인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

 

공간에 대한 인지 오류가 공포를 유발한다는 것은 환경 심리학에서도 다루는 주제입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 사람이 없는 공간에 노출될 경우 현실감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이는 리미널 스페이스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https://www.apa.org)).

 

심리극으로서의 백 룸,그리고 의도된 불분명함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는 명확한 괴물이나 위협이 있어야 무섭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전제가 틀렸다고 확신했습니다. 《백룸》의 공포는 '비어 있음' 자체에서 나옵니다.

 

영화는 결국 클라크의 심리극입니다. 현실과의 단절, 피해 의식,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심리 상태를 건축적 공간으로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백룸의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 출구의 부재, 거리 감각의 파괴는 클라크의 내면이 투영된 은유로 읽힙니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클라크의 심리를 상황극으로, 메리 박사의 심리를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으로 교차 서술합니다. 플래시백이란 서사의 시간적 흐름을 거슬러 과거 장면을 삽입하는 편집 기법으로, 인물의 동기나 내면을 관객에게 비선형적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전개가 다소 급하게 건너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설명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채 상황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기가 조금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불분명함은 실수가 아닙니다. 케인 파슨스가 원래부터 백룸 서사에서 확립한 방식, 즉 설명하지 않는 것 자체가 공포의 원천이라는 원칙을 그대로 영화에 적용한 것입니다. 다만 이 의도를 모른 채 보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서사적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영화 비평계에서도 공간 연출과 미장센(Mise-en-scène)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세트,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 등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영화 연출의 핵심 개념입니다. A24는 《미드소마》, 《유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기존 장르 문법을 해체하는 작품들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스튜디오이며, 이번 작품도 그 계보에 자연스럽게 놓입니다([출처: A24 공식 사이트](https://a24films.com)).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비상구 계단 복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형광등, 텅 빈 공간, .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그 특유의 서늘한 감각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겁니다. 좋은 공포 영화의 기준이 뭔지 새삼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케인 파슨스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지 기대됩니다. 프랜차이즈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 감독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 공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어떤 영화보다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 혼자 보는 건 각오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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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youtu.be/SiO8watn-RI